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가급적이면 관심 안 가지려고 했는데...





2009년 10월 21일자 급황당개그 : 이른바 '정론직필' 편






  • 야스페르츠 2009/10/21 11:02 # 답글 성지순례왔습니다.

  • 정론직필 2009/10/21 11:13 # 야스페르츠......실존주의자... 사실 나도 한때 그의 철학에 대해 빠진 적이 있었지.... 근데....그게 모두 별볼 일 없는 것이더라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요. ㅋㅋㅋ 그래서 이제 그런 따위 철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21 11:22 # 철학은 무슨. 실증 없는 역사에 철학 따위가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귀하나 대단한 철학에서 허우적대시구려.

설마하고 다시 봤는데, 야스페르츠(Jaspertz, 또는 아하스페르츠 Ahaspertz)와 야스퍼스(Jaspers)도 구분못하는 이런 지적인지 수준으로 실존주의 별 볼일 없다 운운하고 철학 운운하면 누가 알아주나. - 웹서핑하다 발로 읽은게 다 드러나보이자너 - 수준이 그모냥이니 환단고기, 단기고사나 물고 늘어져 있지.

그러므로 3류 개그 시연.


응? 뭐? 펌 무제한 허용(???) ------> 내가 이 인간의 글을 퍼올 일 따윈 절대 업ㅂ다

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어떤 동인남 이야기






1. 근친상간



칼리굴라는 자신의 모든 여동생들과 육체관계를 가졌다. 호화스러운 향연에는 여동생을 한 명씩 교대로 자신의 아래에 자리잡게 하고, 부인은 자기 위로 올라타게 하여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러는 동안 아직 어린 소녀였던 드루실라는 칼리굴라에게 처녀성을 빼앗겼고, 그러던 어느 날 그와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을 할머니인 안토니아에게 들켰다고 전해진다. (p.36)



2. 혼외정사



칼리굴라는 그녀들을 대할 때, 주로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자신의 발 밑을 걸어가는 그녀들을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노예를 거래하는 상인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품평을 했다. 수치심에 여자가 눈을 내리깔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기분이 나면 식당에서 일어나 제일 마음에 드는 여자를 한 명씩 별실로 불러들여,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음란한 행위의 생생한 증거를 몸에 붙인 채 식당으로 돌아와 여자의 몸이나 함께 했던 잠자리의 장점과 단점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칭찬하거나 비난했다. 누이동생들과의 불륜관계와 매춘부 필라리스와의 악명높은 정교情交는 제외하고, 칼리굴라가 손대지 않은 상류귀부인은 거의 한 사람도 없었다.



3. 동성애



칼리굴라는 자신의 순결이나 타인의 순결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마르크스 레피우스와 마임 배우 무네스테르, 그리고 몇명인가의 남자를 사랑하고, 서로 몸을 더럽혔다고 한다. 친척이자 집정관급인 젊은이 바렐리우스 카투르스는 '칼리굴라는 나를 욕보였다. 그와 함께 하는 잠자리 때문에 내 허리는 언제나 피곤했다'라는 말을 떠벌리고 다녔다. (p.50)



- 수에토니우스,<<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황제>>, 박광순 역, 풀빛미디어, 1998


















중요한 건 저러다 칼빵 맞고 저승행.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남자의 남자






8년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몰론이 세운 연설가학교로 가던 길에 납치된 적이 있었다. 해적들이 그에게 20탈란트의 몸값을 내라고 하자 카이사르는 화를 내면서 자기 몸값은 적어도 50탈란트는 된다고 주장했다. 또 자기를 납치한 자들에게, 자기가 놓여나기만 하면 그들을 붙잡아서 십자가에 매달겠다고 경고했다. 카이사르는 이 약속을 지켰다.

(p.201-202)


- Tom Holland,<<공화국의 몰락 Rubicon>>,김병화 역, 웅진닷컴, 2004


부제: 푸틴 따위는 저리 찌그러지라고 하센.

2009년 9월 24일 목요일

海外 동쪽에 식충국食蟲國이 있었다.






성현은 15세기에 저술한 <<용재총화>>에서 가난뱅이는 빚을 내서라도 실컷 먹어대고, 군사들이 움직이면 군량짐이 반을 차지하며, 관료들은 조반早飯, 조반朝飯, 주반晝飯에 수시로 모여 술을 마신다고 비판했다.
조선 전기 훈구파의 거목인 이극돈은 상소를 올려 풍년이면 먹을 것을 아끼지 않아 중국사람들이 하루 먹을 분량을 한 번에 먹어치운다고 개탄했다. 16세기에는 잘 헤아리지 않고 먹을 것이 생기면 닥치는 대로 먹는다 하여 '조포석기朝飽夕肌'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이는 아침에 양식을 다 먹어치워 저녁에는 굶는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 성인남자의 곡물섭취량은 지금의 세 배 가량 되었다. 어린아이도 어른의 곡물섭취량을 거뜬히 먹어치웠다. .... 이런 습속은 크게 변하지 않아 일제 시대에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 가운데 소화기계통의 질환이 열악한 위생상태에도 불구하고 줄곧 1,2위를 유지했다. 일상적인 빈곤 때문에 먹을 것이 생기면 잔뜩 먹는다는 인식이 있으나, 평상시에도 늘 많이 먹었다는 것은 평소 굶주려서 그랬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많이 먹는 습관은 생산곡물의 상당부분은 먹고 사는데 투자하게 했고, 일상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p.129-131)

- 한국고문서학회,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 역사비평사, 2006


식사량은 줄었는데 대신 식료품은 풍족해지고 빨리 먹는 습성까지 따라붙었으니 현대에도 큰 차이는 없을 듯.(그렇게 먹어댔으니 평균 신장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인 것도 당연한 결과)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20世紀 三巨星
























쌀람해염.(퍼퍼퍽)